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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끄적

낙화, 이형기

by 시시프 2010. 4. 27.

앞 마당 목련과 저 멀리 초저녁 달


앞마당에 목련이 탐스럽게 피었다가 하룻밤 새 시들해졌다. 오늘 비 갠 아침 나가보니 꽃은 기어이 다 지고 없다. 봄인 줄로 착각하고 바깥에 내어놓았다가 뜻밖에 내린 눈에 아끼던 화초도 몇 죽였다. 기다려도 오지 않던 봄이, 반가운 기색 내보일 여유도 주지 않고 벌써 멀리 갔다. 만물의 생명이 태동하고 희망의 잎새를 틔우는 봄날에도 우리는 이별을 준비한다. 내가 떠나야 할 날도 알지 못하는데, 네가 떠나는 날을 어찌 알고 나는 준비를 할까. 그래서 매일이 가슴 아픈 이별의 날이다.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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