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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800-문학

독서메모 : 최인훈의 광장 부분 발췌

by 시시프 2009. 6. 29.

   최인훈의『광장』을 읽으면서 부분 발췌. 61년판 서문은 소름 돋는 명문이다.

60년 시월 광장 서문
   
   '메시아'가 왔다는 이천 년래의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것은 풍문에 만족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우리 친구의 얘깁니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새벽』 1960년 10월]


 광장 1961년판 서문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한 사회에 살면서 끝내 동료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현대적 산업 구조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혈거인의 동굴로부터 정신병원의 격리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밀실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그곳에 이르는 길에서 거상(巨象)의 자결을 목도한 사람도 있고 민들레 씨앗의 행방을 쫓으면서 온 사람도 있다.
   그가 밟아온 길은 그처럼 갖가지다. 어느 사람의 노정이 더 훌륭한가라느니 하는 소리는 아주 당치 않다. 거상의 자결을 다만 덩치 큰 구경거리로밖에는 느끼지 못한 바보도 있을 것이며 봄 들판에 부유하는 민들레 씨앗 속에 영원을 본 사람도 있다.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이명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떻게 밀실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왔는가. 그는 어떻게 광장에서 패하고 밀실로 물러났는가.
   나는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으며 다만 그가 '열심히 살고 싶어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가 풍문에 만족지 않고 늘 현장에 있으려고 한 태도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진 것이다.

1961년 2월 5일
저 자

 
   "고독해서 저러는 거야"

   "이군, 친구들이 소탈한 체하고 털어놓는 연애 얘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게. 정말 소중한 얘기는 그렇게 아무한테나 쏟아놓지 않는 법이야. 설사 하더라도 에누리를 두는 법이지. 자네와 나하구의 우정하군 다른 얘기야. 그런 고백을 한다는 건, 저쪽에 대한 모욕이지. 상대가 그보다 못한 애정 생활의 내력밖에 못 가졌다면, 그는 은근히 자기 생애가 초라한 생각이 들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에는 지루해할 것이 아닌가. 어느 쪽이든 똑똑한 일이 아니야."

   "비평가들은, 아니 자네가 정말 카프카와 똑같은 겪음을 했단 말이야? 거짓말 말아, 저놈은 가짭니다. 이런 식으로 국산 카프카를 엉망진창이 되게시리 두들겨팹니다. ... 광장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가진 느낌이란 불신뿐입니다. 그들이 가장 아끼는 건 자기의 방, 밀실뿐입니다. ... 저희들에겐 좋은 아버지였어요. 국고금을 덜컥한 정치인을 아버지로 가진 인텔리 따님의 말이 풍기는 수수께끼는 여기 있는 겁니다. 오, 좋은 아버지. 인민의 나쁜 심부름꾼.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 ... 좋은 아버지, 불란서로 유학 보내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 자르는 나쁜 장학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이런 역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 " 

   정선생이 그때 선생에서 친구로 내려오는 것을 명준은 어렴풋이 깨닫는다. 자랑스러우면서 서운하다. 우상을 부순 다음에 오는 허전함.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값진 전리품은 사람인 성 싶었다. 그의 만족은 그처럼 크다. 그녀의 마음을 그 동안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녀의 몸의 한 군데를 내받은 지금에야 마음놓고 믿을 수 있었다. 마음은 몸을 따름다. 몸이 없었던들, 무얼 가지고, 사람은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보고지라는 소원이 우상을 만들었다면,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몸이란, 허무의 마당에 비친 외로움의 그림자일 거다.

   어떤 사람에게 미안한 일을 했다는 생각은 이긴 사람의 느낌이다. 어떤 뜻에서건 나와의 사귐은, 윤애에게 한 가지 겪음이었을 거다. 그 겪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녀를 얕보는 일이다.

   사람 모양을 한 살을 안았대서 어떻게 될 외로움이 아니다. 스스로 몸을 얽어오던 그리운 사람들의 사무치는 마음이 그리웠다.

   도대체 어디에 혁명이 있단 말인가. 일류 코뮤니스트의 집에서, 중류 부르주아의 그것 같은 차분함이 도사리고 있는 바에야, 혁명의 싱싱한 서슬이 어디 있단 말일까. 부친은 아들을 비키듯 했다. ... 밖에 나가서 아버지라는 이름에 우울리지 않는 죄를 저지르고 있는 사나이가, 자기 아내와 철든 아이들에게 보이는 너그러움. 그러면 아버지는 무슨 죄를 밖에서 지었다는 건가. 혁명을 판다는 죄, 이상과 현실을 바꾸면서 짐짓 살아가는 죄, 그걸 모를 리 없는 아버지가 계면쩍어하는 몸가짐일 것이다.

   " ... 정말 삶다운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남녘에 있을 땐, 아무리 둘러보아도, 제가 보람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광장은 아무데도 없었어요. ... 제가 월북해서 본 건 대체 뭡니까? 이 무거운 공기. 어디서 이 공기가 이토록 무겁게 짓눌려나옵니까? 인민이라구요? 인민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 정권을 세운 기쁨으로 넘치는 웃음을 얼굴에 지닌 그런 인민이 어디 있습니까? 바스티유를 부수던 날의 프랑스 인민처럼 셔츠를 찢어서 공화국 만세를 부르던 인민이 어디 있습니까? ...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라구, 인민의 혁명이 아니라구요. 저도 압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때 프랑스 인민들의 가슴에서 끓던 피, 그 붉은 심장의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 

   "... 있는 것은, 비루한 욕망과, 탈을 쓴 권세욕과, 그리고 섹스뿐 ... "

   "... '혼자서 공화국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는군. 당이 명령하는 대로 하면 그것이 곧 공화국을 위한 거요. 개인주의적인 정신을 버리시오'라구요. ... 일이면 일마다 저는 느꼈습니다. 제가 주인공이 아니고 '당'이 주인공이란 걸. '당'만이 흥분하고 도취합니다. ... '당'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한숨지을 테니, 너희들은 복창만 하라는 겁니다. ... '일찍이 위대한 레닌 동무는 말하기를···' '일찍이 위대한 스탈린 동무는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위대한 동무들에 의하여, 일찍이 말해져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인제 아무도 위대해질 수 없습니다. ...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적 현실의 모든 경우에 한결같이 적용되는 단 한 가지의 처방을 내린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 그가 자기 시대를 분석한 그의 저술 속에서 쓴, 방법론을 가리켜야 합니다. 이론 속에 엉켜 있는 방법과 정책이 분리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이론이든 마찬가집니다. 정책에 대해서는 방법론의 창시자조차도 반드시는 정확하달 수 없습니다. 하물며 계승자인 경우에는, 어느 누구도 해석권을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위대한 동무들도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었을 리가 없고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 수많은 고결한 심장의 소유자들이, 이런 공화국을 만들려고, 중세기의 순교자들보다 더 거룩한 죽음을 한 건 아니잖습니까? 그들의 피에 대한 배반입니다. 그 누군가가 위대한 선구자들의 피를 착취하고 있습니다. ... 인민이란 그들에겐 양떼들입니다. ... 인민을 타락시킨 것은 그들입니다. 그리고 북조선의 공산당원들은, 치사하고 비굴하고 게으른 개들입니다. 양들과 개들을 데리고 위대한 김일성 동무는 인민공화국의 수상이라? 하하하···"

   혼자서 운다는 일은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의젓한 몸가짐이었다.

   모든 우상은 보이지 않는 걸 믿지 못하는 사람의 약함 때문에 태어난 것.

   사랑의 말에서는, 남자가 얼간이고 여자가 재치있게 마련이었다. 남자가 고지식하고 여자가 교활하다는 말일까. 남자는 따지고 여자는 믿는다는 까닭에서일까.

   입 밖에 내지 않았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일도, 한번 말이 되어 나와버리면 허물어버릴 수 없는 담을 쌓고 만다.

   ... 그리도 느리던 시간의 걸음이. 아니 그때는 시간이 없다. 적어도 그는 지금 밥과 옷을 제 손으로 번다. 그런데 밥과 옷을 제 손으로 번다는 게 생활이란 말의 뜻일까? 갖은 화려한 공상과 괴로운 생활의 골짜기를 거쳐 이른다는 데가 밥과 옷인가.

   작은 일을 가지고 속물들과 부딪쳐서는 안 된다.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이 웅덩이에 빠져 죽어서는 안 된다. ... 죽은 사람들로 죽은 사람들을 묻게 하라.

   "나? 나 같으면 이따위 바보 짓은 안 해. 전쟁 따윈 안 해. 나라면 이런 내각 명령을 내겠어. 무릇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삶을 사랑하는 의무를 진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인민의 적이며, 자본가의 개이며, 제국주의자들의 스파이다. 누구를 묻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인민의 이름으로 사형에 처한다. 이렇게 말이야."

   우리 목숨을 주무르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장삼이사, 그놈이 그놈이다. 자기만 별난 줄 알면 못난이 사촌이다. 광장에서 졌을 때 사람은 동굴로 물러가는 것. 그러나 과연 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이 세상에 있을까. 사람은 한 번은 진다. 다만 얼마나 천하게 지느냐, 얼마나 갸륵하게 지느냐가 갈림길이다. ... 나는 영웅이 싫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좋다. 내 이름도 물리고 싶다. 수억 마리 사람 중의 이름없는 한 마리면 된다. 다만, 나에게 한 뼘의 광장과 한 마리의 벗을 달라. 그리고, 이 한 뼘의 광장에 들어설 땐,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만한 알은체를 하고, 허락을 받고 나서 움직이도록 하라. 내 허락도 없이 그 한 마리의 공서자를 끌어가지 말라는 것이었지. 그런데 그 일이 그토록 어려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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