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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끄적

소년

by 시시프 2011. 12. 4.

이십 년을 살아온 주택을 부수고 콘크리트 네모 각진 아파트로 이사했다. 정든 곳을 떠나면서 지난 기억들을 조금 기록해놓고자 한다.

이십 년 전 이곳은 온통 논밭 뿐이었다. 별로 특이할 것도, 놀 것도 없는데 어릴 적엔 뭐가 그리도 재밌었던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저학년 때는 뭘 사먹고 싶어도 엄마가 돈을 안 주니까 용돈벌이 좀 하겠다고 동네 병 주우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삼삼오오 동네방네 병 주우러 다니는 게 하루 일과였다. 병 나올까봐 땅도 파고 그랬다. 병 판 돈은 껌이나 하드 정도로 바꿔 먹었다.
동네 형들은 재주도 많아서 쫓아 다니면 자잘한 잡기들을 배울 수 있었는데 뭐 맨손으로 파리 잡기 같은 일이었다. 파리 잡아서 날개 떼고 바닥에서 뒹귀는 거 지켜보고 그랬다.

 

개학 후 눈따가운 봄날, 엄마 지갑을 몰래 뒤져 학교 앞에서 동족 사이에 압사 직전인 노란 병아리를 몇 마리 사오기도 했다. 귀여웠다. 손바닥만 한 마당에 풀어 놓고는 이층에 올라가 비비탄 총으로 저격수처럼 수렵을 했다. 군대서 총을 별로 잘 쏘진 못했는데 어릴 적 영재교육의 효과는 잘 못 본 건가, 아무튼 강하게 기른 병아리들은 학교 앞 빠께스에서 함께 몸 부딪던 다른 친구들의 어린 죽음을 극복해 성년으로 자라났고, 싱크대 수채통의 밥풀떼기를 그 노란 부리로 콕콕 잘도 쪼아먹다가 명절 날에 시골사는 큰이모부의 손에 목이 비틀려 죽임을 당했다. 

 

내가 사-오학년 쯤인가, 집 앞 모퉁이를 돌아 이층에 살던, 키가 큰 중학생 형한테 두 살 터울의 동생이 흠씬 두들겨 맞고 왔다. 가부장 문화의 수혜를 충실히 입고 자란 나는 동생을 꼬리에 달고 그 집 앞에 섰지만 초인종은 누르지 못하고 나도 뒤지게 맞을까 두려워 쫌 서있다가 그냥 왔다. 동생은 그래도 날 믿고 좋아했다.

 

동생은 뭘 배우든 항상 나보다 느렸다. 나는 유치원 가기 전에 두 발 자전거를 탔는데 얘는 오학년이 되어서도 타지 못했다. 동생 앞에서는 언제나 우쭐했던 나는, 뒤에서 확실히 잡아줄 테니 페달을 굴리라고 했고 동생은 페달을 밟으며 나아갔다. 조금 뒤따르던 나는 금방 숨이 차올라 에라, 손을 놓았고 동생은 그 순간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자전거는 그렇게 배우는 거라고, 잘 가르쳤다고 아빠는 나를 칭찬했다. 그 뒤로 어디 가려고 신발끈을 쪼르고 나오면 타고 나가려던 자전거는 이미 없었다.
뭐든지 나보다 못하는 동생을 곧잘 구박했고 동생은 구박을 당하면서도 경외의 눈빛을 보이며 나를 잘 따랐다. 나보다 걔가 먼저 취직하고 가끔 동생에게 용돈을 받아쓰면서 존경과 경외의 관계는 서서히 깨어졌다.

중학교에 가서 용다리라는 친구를 만났다. 이주일의 수지큐 춤을 이주일보다 더 웃기게 잘 췄다. 결단코 못생겼고 오다리에 걸음걸이도 희한한 데다 야한 말과 -지금 생각하면 그 창의력이란!- 욕설을 입에 달고 살던 그 친구가 나는 되게 좋았다. 용다리는 이름 때문에 놀림 받던 일이 잦았는데 나한테만 몰래 자기 진짜 이름은 진수라고 했다. 그 이름은 집에서만 부른다고 했고 학교서는 비밀이라고 했다. 당시 같은 반에는 키크고 싸움 잘하는 진수라는 애가 있었고, 멋있는 진짜 이름은 집에서 부르고 이상한 이름을 왜 학교에서 부르게 했는지 의아했지만 묻지 않았다.
당시 나는 친구로부터 포르노 트럼프 카드를 빌려다가 '아빠한테 걸렸다'는 거짓말로써 내 소유로 한 것이 있었는데, 그 트럼프를 다시 빌려간 용다리는 다음 날 아침 내게 와 아빠한테 걸렸고 아빠가 트럼프를 불 질렀다고, 시선을 회피하며 말했다. 나는 '아니 걔네 아빠는 왜 그냥 안 버리고 불까지 질렀을까, 플라스틱이라 안 타고 그을음만 존나 나지 않나'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방과 후 용다리네 집 주변에 불 지필 만한 산과 논밭을 해질녘까지 수색했으나 물론 트럼프는 찾지 못했다. 그의 말이 앞 뒤가 잘 맞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만 아빠한테 걸렸다는 말은 전가의 보도였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친 놈처럼 논밭을 작대기로 들춰대며 저녁 늦도록 배회했다. 이것이 성현의 말씀대로 인과응보 사필귀정이구나, 생각했다.
스무 살이 넘어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용다리를 만났는데, 나는 엄마가 돈이 좀 있어서 옷때깔이 좋았고, 용다리는 엄마가 돈이 없었는지 그렇지 못했다. 용다리는 웃고 있었지만 대화는 길게 하지 않고 나를 세워두고 찻길 건너 깜깜한 데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 뒤로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국민학교 이학년, 아홉 살에 동네에서 놀다가 효칠이를 만났다. 삼학년에 올라가선 신기하게 같은 반이 됐고, 초중고교를 모두 함께 다녔다. 만난 순간부터 좋았고, 그 순간부터 계속 더 친해졌다. 사춘기가 올 중학 이-삼년 무렵 어느 여름 날에 빨간색 쪼리를 신고 나타난 효칠이가 그냥 너무 미웠고, 걔보다 싸움을 잘했던 나는 다른 일을 구실삼아 그를 존나게 때려줬다. 쪼리 신었다고 때리는 건 미성숙기에도 정의가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에 분노를 참으며 팰 기회를 옅보다가 바로 응징했다. 효칠이가 나보다 키가 자란 고등학교에 가서는 폭력은 절대 삼갔다.
학창 시절 효칠이는 여느 노는 애들이 그러했듯 바지를 내려 입었다. 그는 당구를 치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효칠이는 일진 같은 거 보다는 굶주린 아랍 이민자 같이 생겼는데, 그런 폼새로 큐대를 들고 담배를 깨문 모습이 참으로 우습고 가증스러웠다. 뭣도 모르고 겉멋만 쳐들어서 자기는 멋있고 인기 많은 것처럼 행세하는 그의 병신같은 강박과 인격장애의 역사는 중학 시절부터로 추정된다. 하여간 그래서 많이 맞았다.

고3 때 독서실을 함께 다니다가 우리는 한 예쁜 여학생을 발견했다. 발견이라기 보다는 '발명'했다. 예뻤지만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고, 같이 독서실을 다니던 정액 넘치는 남자 애들이 당시 잘 팔리던 샴푸 이름을 그녀에게 부여했고, 별의별 수선을 다 떨면서 그녀를 미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발견 아닌 '발명'을 한 것이다.
어느 날 샴푸의 친구로부터 낭보가 하나 날아들었으니 내용인 즉, 그 샴푸가 독서실에 다니는 우리 학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효칠이는 그게 본인임을 자신하고 있었던지 독서실에 들어갈 때면 어깨를 으쓱으쓱하며 눈깔과 모가지에 힘을 줬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샴푸로부터 모의고사 전 날 케이크를 받은 건 나였고, 나는 좋으면서도 애들한테는 왠지 조금 미안했다. 손을 잡거나 어깨나 허리에 손을 두르고 다니는 건 좋았지만 대화를 나누는 건 어쩐지 조금 귀찮아했던 나를 두고 수차례 떠났다 돌아왔다, 어디서 났는지 술을 먹고 자빠졌다 일어났다를 제멋대로 반복하던 샴푸는 몇 달 뒤 떠나갔고, 우리는 수능을 쳤다. 시간이 흘러 샴푸는 우리 학교 동창 누구와 다시 사귀었고, 샴푸는 그와 사,오 년을 만나면서 혼전순결을 철저히 고수하더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헤어지길 잘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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