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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끄적2

소년 이십 년을 살아온 주택을 부수고 콘크리트 네모 각진 아파트로 이사했다. 정든 곳을 떠나면서 지난 기억들을 조금 기록해놓고자 한다. 이십 년 전 이곳은 온통 논밭 뿐이었다. 별로 특이할 것도, 놀 것도 없는데 어릴 적엔 뭐가 그리도 재밌었던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저학년 때는 뭘 사먹고 싶어도 엄마가 돈을 안 주니까 용돈벌이 좀 하겠다고 동네 병 주우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삼삼오오 동네방네 병 주우러 다니는 게 하루 일과였다. 병 나올까봐 땅도 파고 그랬다. 병 판 돈은 껌이나 하드 정도로 바꿔 먹었다. 동네 형들은 재주도 많아서 쫓아 다니면 자잘한 잡기들을 배울 수 있었는데 뭐 맨손으로 파리 잡기 같은 일이었다. 파리 잡아서 날개 떼고 바닥에서 뒹귀는 거 지켜보고 그랬다. 개학 후 눈따가운 봄날,.. 2011. 12. 4.
낙화, 이형기 앞마당에 목련이 탐스럽게 피었다가 하룻밤 새 시들해졌다. 오늘 비 갠 아침 나가보니 꽃은 기어이 다 지고 없다. 봄인 줄로 착각하고 바깥에 내어놓았다가 뜻밖에 내린 눈에 아끼던 화초도 몇 죽였다. 기다려도 오지 않던 봄이, 반가운 기색 내보일 여유도 주지 않고 벌써 멀리 갔다. 만물의 생명이 태동하고 희망의 잎새를 틔우는 봄날에도 우리는 이별을 준비한다. 내가 떠나야 할 날도 알지 못하는데, 네가 떠나는 날을 어찌 알고 나는 준비를 할까. 그래서 매일이 가슴 아픈 이별의 날이다.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2010.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