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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자본주의연구회 단상,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

by 시시프 2011. 3. 25.


국가 안보 vs 표현의 자유


누군가의 반국가적 반체제적인 사상과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로부터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되는 상황은 무엇인가. 그 누군가의 생각이 종북주의라면, 북한으로부터의 적화통일이라든지, 우리나라의 공산주의화일 수 있다. 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붕괴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우려를 가질 수 있다. 어떤 우려든지 국가적, 공동체적인 거대하고 심각하고 못된 변화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


과연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공론의 장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한 것이, 그것이 불러 일으킬, 우려되는 어떤 상황에 대해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가 묻는다. 명백한 위험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우려되는 어떤 상황이 시간적으로 급박하게 가까이 도래했는가 다시 묻는다. 이것은 현존하는 위험인가라는 질문이다. 명백한, 현존하는,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지 않는다면 표현의 권리는 인정된다. 유명한 법리다.

요즘 벌어지는 일들이 이해가 잘 되질 않는다. 누구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모습이 어떠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국가가, 자신의 삶이 이러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좋은 것은 좋은 대로 잘 보존하고, 나쁜 것은 골라내어 좋게 바꾸면 더 나은 세상에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의 실현을 보장하는 제도가 민주주의다. 주장은 주장과 맞붙어야 하고, 당시대의 보편적 정신과 인식, 지향 속에서 어떤 주장은 옹호되고, 다른 주장은 사멸되거나 폐기되는 것이 자연스런 과정이다. 권력이나 권위가 나서서 이것은 옳은 생각이니 지원하고, 저것은 나쁜 생각이니 잡아 가둔다면, 그 세상은 언제나 권력과 권위만으로 도배된 세상이 될 게 분명하지 않은가.

Neo-Nazi오히려 꼴통들이 공권력의 보호 아래 있는 쿨한 광경


It is an experiment, as all life is an experiment


사람들이 굶어 죽고, 삐끗하면 아오지 끌려 가는, 최소한의 인간답게 살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북한 인민의 현실을 보면서 친북, 종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밉다. 열받게도 밉상들은 어딜 가나 있다. 사진 속 네오 나찌들의 꼴을 보라. 어떤 욕을 퍼부어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주의를 국가의 근본으로 삼은 이상,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고, 다른 주장도 존중해야 한다. 틀린 말도 경청해야 교정해 줄 수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복하게 살면서 지불해야 할 댓가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내가 가진 신념을 회의하고 반성해 볼 수 있으며, 나의 논리를 강화할 수 있고, 내가 딛고 선 논리의 지반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나와 내가 속한 국가와 체제를 긍정하게 되는 것이다.

진리로 가는 모든 여정은 실험이다. 실험실에 혼자 앉아서, 언제까지 좌고우면 시간만 때울 것이며, 거듭 시행착오로 좌충우돌할 것인가. 진리에 다다르는 가장 빠른 길은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고 설득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 협력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사상의 거래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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