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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반론 : 강남역 묻지마 살인과 여성혐오

by 시시프 2016. 5. 23.


http://blog.aladin.co.kr/749915104/8507663


‘강남역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사건을 여성혐오로 규정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 정신질환병자에 의한, 조금 비약하자면 여성‘대상’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이 둘은 단어 한끗 차이지만 범죄의 원인과 논의의 결과는 상당히 다를 것입니다.


말씀대로 이 문제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으로 해석될 문제입니다. 조현병이라는 개인과 그에 대한 무관심과 방치의 결과가 낳은 비극인 것이죠. 전통적으로 보수는 범죄를 개인의 특성에서 기인한, 자유 의지의 산물로 보고 개인을 처벌하는 방식으로 범죄를 다뤄왔습니다. 진보는 사회적 차원에서 공동체 안에서 소외된 개인, 사회적 유대의 결핍 등을 주로 하여 문제를 풀어나가려 했죠. 그런데 두 번째 단락에서 ‘진보 쪽은~ 여성 혐오 현상이 발단이 되어 발생한 혐오 범죄로 파악한다’는 문장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진보가 사회적 맥락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맞는데, 사회적 맥락에서 보는 것=여성혐오범죄로 파악하는 것이 라고 단순하게 도식화하는 것은 오류이고, 끝나는 마침표까지 이 틀에서만 사유하시니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성’ 박근혜가 호출되는 것이지요. 형사정책적, 행정적 차원에서 ‘대통령’ 박근혜가 호출된다면 동의하겠습니다. 강남역 사건에서 마주쳐 소리난 손바닥의 양쪽은 조현병과 여성혐오가 아니라, 조현병(개인맥락) + 그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사회맥락)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강남역 살인 사건을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 가족 등 사회로부터 무관심으로 방치된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범죄로 보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논의 범위를 넓혀도 여성혐오가 아닌 여성‘대상’범죄로 보는 것입니다.


짧은 글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조현병이라는 다른 하나의 원인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현병 증세로서 ‘망상’은 합리성이 결여된, 완전히 상실된 현상입니다. 03년부터 환청이 들리고, 어느 순간 ‘여성’에 꽂혀서 ‘여성이 나를 견제한다’라는 등의 피해망상에 시달리다가 그쪽으로 피해망상이 계속 커져왔고, 설상가상으로 먹어야 할 약을 먹지 않게 된 결과 ‘이러다가는 내가 죽겠다’라는 생각에 일종의 자기방어로써 살인에 이르게 되었죠. 살인이라는 결과에 이르게 된 원인들이 하나같이 이해가 되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정신병자인 것이죠. 

여성혐오자들로서 일베를 예로 드셨는데, 일베 밉죠. 여성혐오자들 맞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극렬여혐종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살인은 하지 않거든요. 누구는 왜 범죄를 저지르는가, 누구는 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가? 하는 것은 형사정책의 오랜 화두입니다. 저는 살인이라는 범죄 실행의 벽을 타넘은 원인을 조현병에서 찾은 것이고, 더불어 그가 제때제때 적절한 의료처우를 계속 받아왔다면, 화목한 가정에서, 혹은 경제적 궁핍을 겪고 있어서 의료서비스에서 소외되었을 경우 사회적 지원이 있었더라면, 주변인의 관심 속에서 계속 약을 복용했더라면, 강남역 사건은 없었을 텐데,라는 단절된 사회 유대를 다른 원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개인, 사회적 맥락입니다.


‘남성은 잠재적 살인자’ 혹은 ‘살女주세요’ 등의 표어를 위시한 전위대들의 행동이 저는 대단히 불쾌합니다. 만일 유리천장 같은 사회 현상을 근거로 여성의 억압을 주장한다면 저는 백퍼센트 동의하겠습니다. 정서적으로도, 업무효율 측면에서도 남녀가 조화를 이뤄야 하고, 그래서 남녀고용평등제 등 성비 균형적 제도가 더욱 강력히 실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3이 뭡니까, 5:5까지 강제 할당해야 합니다. 공대 나와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국회의원도 무조건 5:5! 

그런데 강남역 사건을 여성혐오로 치환해서 남성에게 告하는 방식으로 훈계하는 거라면, 이거야말로 빗나간 비약이고, 과장된 공포로 오히려 혐오와 분노를 조장하고, 언어로써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분풀이 폭격을 가하는 것입니다.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를 해치는 주장들입니다. 물론 고려할 필요는 없지만 때로는 이 사람들이 정말 피해자를 위해서 하는 주장들인가 의아한 경우도 있습니다. 남녀평등주의는 환영받아야 할 가치인데 이것이 무슨 악세사리처럼 이용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죠. 강남역 거기까지 가서 주먹질하고 개판치는 사람들. 이때로다 우아하게 차려입고 나와 날려쓴 a4지 두 장 들고 카메라 세례 받는 예쁜이. 어떤 게 주主고 어떤 게 객客이겠습니까. 주객전도를 목격한 건 저뿐만은 아니겠죠.


‘남성은 여성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이해하지 못한다.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동의합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체험하지 않아도 조금은? 알게 되는 것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강자에게 느끼는 무력감과 공포를 공감합니다. 술 먹다가 문신한 조직폭력배한테 시비 걸렸을 때는 저도 정말 뒤질 뻔해서 가슴을 쓸어내렸죠. 실화입니다. 학창시절은 어떻습니까, 일진한테 주머니 털릴 때도 수사가 아니라 정말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하물며 살인의 공포는 이보다 더한 것이겠죠.

그래서 조현병이라는 특이성을 떼어내서 차원을 달리하는, ‘여성대상범죄’를 상정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에 표적이 되는 범죄입니다. 그 공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때에도 방점은 ‘여성’이 아닌 ‘약자’에 찍혀야 할 것입니다. 약자는 여성도 있지만, 미성년 소년 소녀도 있고, 노인도 있습니다. 장애인도 약자입니다. 사회적으로는 다방면에서 걸쳐 소수자들이 핍박을 받고 있죠. 이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산다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한줌의 권력,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다고 생각되면 우리들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했는가. 모든 권력관계가 비천하고 저열한 사회에서, 돌아보면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들 투성이 아니겠습니까. 약자에 대한 공격성과 폭력성은 인간도 동물인 이상 보편의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본능대로 산다면 그건 세렝게티 야만 사회지 문명 사회를 살아가는 문명인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자유와 휴머니즘,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인간적 재능, 인간성을 지향하고 갖춰나갈 때 범죄를 예방하고, 재범률을 낮추고,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나이브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이 정도가 제가 이번 강남역 사건을 보는 시각입니다. 여혐이든 남혐이든, 남자라서 죄송해요, 잠재적 살인마, 이런 류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듣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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