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하여라, 삼미슈퍼스타즈.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아침의 문>으로 처음 접했던 박민규. 그보다 7년 전에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게 놀라울 따름. 선입선출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후기작을 먼저 읽은 나로서는, 오히려 그의 스타일이 더 잘 드러난 작품은 요것이라는 느낌이다. 아주 발랄하면서도 중구난방이지만 주제의식이 명확하다.
자본주의를 주제로 한 책들을 보면 어쩐지 패배주의적인 냄새가 난다든지, 고작 자본에 비껴서서 살 수밖에 없다는 대체로 뻔한 결론들인데, 이 책은 그 뻔함 속에 유머를 섞어 놓음으로 해서 '야, 대강 해도 재밌어'라는 메세지를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
뭐 어찌 됐든, 나도 박민규를 따라서 -백프로 그의 덕은 물론 아니지만, 탓이라면 백프로 그의 탓-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기는 했지만, 소설은 못씀으로 해서 그저 백수로 전락했다는 황량한 허무개그. 모쪼록 내가 사회의 잉여자원은 절대 아닐 것이라는 희망과 바람, 현재의 자기긍정이 얼마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또한 이율배반적으로 가지는 작금의 현실.
수퍼맨은 우타석에 들어섰던 것이다!
삼미슈퍼스타즈는 일종의 이중간첩 같은 존재로, 프로라는 거대한 체제를 고꾸라뜨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살신성인의 hero로 해설된다. 그들이 진정한 hero임을 저 엠블럼이 확실하게 보증하고 있긴 하지만, 디자인 센스에 얼굴이 홧홧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극적 효과는 그들이 진짜 프로페셔널한 실력을 갖추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며, 당연히 이 사실은 감춰져야 하면서도 은연 중, 은밀히 상대가 알아채도록 조금씩 단서를 제공할 때 상대로부터 조롱 당하지 않을 수 있고, 더불어 세상을 달관한 듯한 초월자의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는 것이다. 어수룩한 클라크도 사실은 알고 보니 수퍼맨일 때에 퀸카 로이스 레인과 사귈 수 있고, 고려대쯤은 다녀야 자퇴서를 내던져도 폼이 나는 그런 자명한 이치다. 어쩐지 더 잔인하지 않은가.
'소속이 사람을 정의한다'라는, 소설 전체로써 반박 당해야 했던 논리는 여전히 현실 유효 타당하므로,
아, 그리고 인천엘 가면 꼭 사이다를 먹어야지,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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