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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800-문학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 박민규, 한겨레출판

by 시시프 2011. 3. 22.


통쾌하여라, 삼미슈퍼스타즈.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아침의 문>으로 처음 접했던 박민규. 그보다 7년 전에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게 놀라울 따름. 선입선출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후기작을 먼저 읽은 나로서는, 오히려 그의 스타일이 더 잘 드러난 작품은 요것이라는 느낌이다. 아주 발랄하면서도 중구난방이지만 주제의식이 명확하다.

자본주의를 주제로 한 책들을 보면 어쩐지 패배주의적인 냄새가 난다든지, 고작 자본에 비껴서서 살 수밖에 없다는 대체로 뻔한 결론들인데, 이 책은 그 뻔함 속에 유머를 섞어 놓음으로 해서 '야, 대강 해도 재밌어'라는 메세지를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

뭐 어찌 됐든, 나도 박민규를 따라서 -백프로 그의 덕은 물론 아니지만, 탓이라면 백프로 그의 탓-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기는 했지만, 소설은 못씀으로 해서 그저 백수로 전락했다는 황량한 허무개그. 모쪼록 내가 사회의 잉여자원은 절대 아닐 것이라는 희망과 바람, 현재의 자기긍정이 얼마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또한 이율배반적으로 가지는 작금의 현실.

삼미슈퍼스타즈 로고수퍼맨은 우타석에 들어섰던 것이다!


삼미슈퍼스타즈는 일종의 이중간첩 같은 존재로, 프로라는 거대한 체제를 고꾸라뜨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살신성인의 hero로 해설된다. 그들이 진정한 hero임을 저 엠블럼이 확실하게 보증하고 있긴 하지만, 디자인 센스에 얼굴이 홧홧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극적 효과는 그들이 진짜 프로페셔널한 실력을 갖추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며, 당연히 이 사실은 감춰져야 하면서도 은연 중, 은밀히 상대가 알아채도록 조금씩 단서를 제공할 때 상대로부터 조롱 당하지 않을 수 있고, 더불어 세상을 달관한 듯한 초월자의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는 것이다. 어수룩한 클라크도 사실은 알고 보니 수퍼맨일 때에 퀸카 로이스 레인과 사귈 수 있고, 고려대쯤은 다녀야 자퇴서를 내던져도 폼이 나는 그런 자명한 이치다. 어쩐지 더 잔인하지 않은가.

'소속이 사람을 정의한다'라는, 소설 전체로써 반박 당해야 했던 논리는 여전히 현실 유효 타당하므로,

그래, 우선 대기업 취업 후 비껴살기가 야인의 풍모를 지닌 내가 자본의 험준한 산을 우회하는 가장 좋은 모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 그리고 인천엘 가면 꼭 사이다를 먹어야지,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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