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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800-문학

삼류 예찬 : 상처적 체질(2012), 류근, 문학과 지성사

by 시시프 2012. 6. 15.

경향과의 인터뷰(링크)에서 밝힌 시인 류근의 삼류론을 읽고 인간의 행복과 자존 등에 대한 생각이 들어 병신같지만 끄적여둔다. 내 마음에 꼭 드는 글을 만나는 건 참 힘든 일인데, 게다가 말로 곡예 부리는 애들 때문에 시 읽기 더 싫어지던 참에, 오랜만에 임자 만났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시길.


인간은 스스로 강해져서 약해진 존재다 불쌍하고. 그런 측면이 있다. 인간의 시간, 역사는 나아가면서 쇠락한다. 빛을 잃고. 쓸쓸한 측면이 있다.

강금실 ‏@kangkumsil 트위터


 

삼류가 있다. 어떤 인간의 순수한 열망이 실현되지 못하고 실패하는데, 그 실패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마저 저급하고 초라한 것이 삼류다. 삼류에 아름다운 패배라든지 이보전진을 위한 후퇴 이런 건 없다. 깨질 때도 저밑까지 후지고 저열하게 깨지는 것이다. 가령 여친에게 멋있어 보이려 머리 깎고 왔는데 여친은 말 없이 조소할 때, 삼류의 순간이다. 길가는 여성에게 혹시 시간 있음 소주나 한 잔 해요 묻는데 이 여자가 그냥 가는 게 아니라 힐끗 보고 가는 건 거절한 게 아니라 심판한 것이다. 삼류는 진실함이 기각 당하는 순간에도 동정과 연민 대신 조롱과 비웃음을 산다. 부서지고 내동댕이쳐지면서도 그 모양이 촌스럽고 천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류는 실패에 좌절하거나 주류에 굴종하지 않고 본연의 자세를 견지한다.


이창동의 오아시스(좌) 이창동의 오아시스, 설경구 / (우) 꽃비를 맞으며 사랑이 이뤄..지긴 개뿔, 다 꿈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류는 구도자다. 그가 구하는 도는 패도敗道다. 패배자敗北者의 길이다. 패배자가 가는 길에는 희극도 없고 비극도 없다. 오로지 촌극만이 존재할 뿐. 인생은 병신같은 촌극이다. 아들 여친에게 성매매를 제의했다가 거절 당하고 신문에 실리는 패륜의 미학. 정신·정서적으로 완전한 독립의 상태다. 유교 윤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자신의 뿌리마저 단칼에 배반하고 억만 겁 윤회의 연을 초극하는 극한의 정신 경지, 이는 곧 신인류다.

 

하지만 성매매가 거절 당했다고 해서 성폭행 하는 건 패도가 아니다. 심신미약의 미성년자를 연예인 시켜주겠다고 꾀어 따먹은 것도 패도가 아니다. 빤스 탈의 지시 이행 여부로 신도를 판별하는 것도, 목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여신도를 후리는 것도 패도가 아니다. 비열한 폭력과 권위로 욕망을 달성하고자 하면 이는 곧장 통속의 비극으로 전락한다. 여기엔 신파적 해학도 없다. 오직 분노만 있다. 패배해 나뒹굴면 만인의 무미한 삶에 웃을 거리라도 주는 것이다.


패도는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분수를 알면서 적극적으로 좌절하는 것이기에 욕망을 정복한다. 겉치레만 번지르르 속없는 색정광들과는 다르다. 순수한 열정이기에 현학 수사도 없고 명품도 없다. 꾸민 게 없으니 눈치볼 일도 없다. 당할 걸 알면서도 내밀한 것들을 온전히 내어주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패도는 패배주의가 아니다. 패배주의는 인간을 은둔자로 만드는 자기부정이지만, 패도를 가는 인간은 지기 위해 태어났으므로born to be defeated 패배를 오롯이 품어안는 자기긍정을 한다. 코끼리가 진창을 벗어나듯 묵묵히, 고집스럽게 하나씩 자신을 버리며 차라리 약해지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패도는, 못나고 부족한 자기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완전한 개인 주체로 홀로 서는 실존 양식이다. 자연에 순응하되 독립된 개체로서 인간성을 발현하는 데 인색하지 않고 염치를 아는 자유의 길이다. 


스스로 약해져서 강해진 인간이 있다. 패배자의 길을 가는 삼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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